> 뉴스 > 국제·통일
     
사우디 왕실 비판 언론인 피살 파문
국제 외교 및 경제 분쟁으로 격화될 조짐 보여
2018년 11월 07일 (수) 18:07:28 이종서 기자 jslee@newsmaker.or.kr

지난 10월9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실세 왕세자를 비판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가 사우디 왕실의 지시에 따라 계획적으로 살해된 것으로 터키 정부가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서 기자 jslee@

사우디 일간 알와탄의 편집국장을 지낸 카슈끄지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들을 통해 사우디 주도의 예멘 공습과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단행한 ‘숙청’ 등 정권과 왕실의 강압을 직접 비판했으며 체포를 피해 지난해 미국으로 도피했다.

터키 주재 영사관에 간 후 종적 감춰
지난 10월4일 외신은 카슈끄지가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받으러 9월28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간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그의 터키인 약혼녀 하티제를 인용해 전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 지에 사우디 왕정의 빈 살만 왕세자에 관해 비판적 컬럼을 써오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10월2일부터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날 아침에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은 카슈끄지가 실종되기 전 영사관 건물을 떠났다고 성명으로 주장했다. 사우디 국적으로 워싱턴포스트(WP)에 소속돼 사우디 왕정을 비판하는 칼럼을 써온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는 지난해 9월 사우디를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터키 국적의 약혼녀와 혼인 신고를 위해 터키를 찾았다가 실종됐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 전 사우디 관영 영자언론 아랍뉴스의 부편집장과 친개혁 성향 일간지 알 와탄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사우디 왕가와도 밀접한 관계였다. 그러나 지난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차기 왕위 계승자로 임명된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사우디를 떠났다. WP는 “사우디 핵심 지배층에 가까웠던 인사가 미국에서 반체제 발언을 계속한 것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중대한 위협으로 비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우디는 카슈끄지 실종 초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개입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한 사우디 관리는 카슈끄지가 방문 후 곧바로 영사관을 떠났다고 CNN에 밝혔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CCTV 영상 등 어떤 증거도 공개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국무부가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도 “카슈끄지 사망에 대한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지 친정부 언론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사우디 요원 일행의 구성과 동선을 구체적으로 보도하면서 사우디 최상층부가 개입한 조직적 암살 의혹이 더욱 증폭하고 있다. NYT는 익명을 요구한 터키 보안당국 고위급의 말을 인용, 카슈끄지가 지난 10월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도 안 돼 사우디에서 온 요원들에 의해 살해됐고 시신도 그들에 의해 분리됐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카슈끄지가 실종된 당일 암살 임무를 띤 15명의 사우디 요원들이 2대의 전세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왔고, 이 가운데 1명은 시신 해부 전문가로서 시신을 분리하는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했다. 이들 일부는 사우디 정부 또는 보안기관 소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0월10일 터키의 대표적인 친정부 일간지 ‘사바흐’는 이들 15명의 이름, 얼굴, 출생연도를 공개했다. 신원과 사진의 출처는 제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카슈끄지가 피살되는 장면을 사우디 요원들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터키 보안당국이 확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우디 정부, 사건 보도 2주 만에 카슈끄지 사망 인정
터키 이스탄불에서 사라진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사우디를 강력 비판하면서 해당 사안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7일 CNN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는 터키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이번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며 “해당 사건을 추적 중이다. 결과가 나오면 즉각 전 세계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에르도안은 카슈끄지가 살해됐다는 외신 보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 보좌관인 야신 악타이는 사우디 개입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 15명의 사우디 국적자들이 이번 사건에 개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터키 경찰은 사우디 총영사관 출입구 및 이스탄불 공항 CCTV 영상을 전부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악타이는 “만일 카슈끄지가 살아있다면 사우디가 증거물을 제공할 것”이라며 “그가 현재 사우디 영사관에 있지 않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사우디 정부가 그에게 진정제를 먹였거나 몸을 조각냈을(토막살인)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그는 “이번 사건은 터키의 이미지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면서 “터키에 입국하는 사람은 모두 터키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터키는 사우디에 책임을 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 경찰당국은 사우디에서 이스탄불로 간 15인명이 카슈끄지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15명은 카슈끄지가 실종된 지난 10월2일 비행기 2개 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했으며 카슈끄지가 영사관을 방문했을 영사관에 있었고 곧바로 이스탄불을 떠났다고 CNN은 전했다. 한편 사우디 정부를 반대하는 언론인 카슈끄지가 영사관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숨졌다고 사우디 정부가 발표했다. 사건 발생 초기 아무 관련 없다던 사우디는 사건 보도 2주 만에 마지못해 인정한 한 것. AFP, DPA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당국은 지난 10월18일 밤 국영TV를 통해 성명을 내고 카슈끄지가 사망한 사실을 발표하면서 카슈끄지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 한 달 내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국가안보 및 외교부, 내무부 관료들로 구성하며,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끈다는 방침이다. 사우디 측은 카슈끄지의 사망 과정에 대해 영사관 내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 도중 육체적 충돌이 일어나 사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성명에서 “카슈끄지와 그가 영사관 내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발생, 주먹다짐(fist-fight)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카슈끄지의 죽음을 이끌었다”며 “이와 관련 18명을 체포했고,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카슈끄지가 영사관 내에서 사우디 측 요원들에게 고문을 당하다 참수됐고, 시신이 훼손되기까지 했다는 외신들의 기존 보도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사우디는 이번 사건과 관련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인 아흐메드 알 아시리 장군, 사우드 알 카타니 등을 해임한 사실도 공개했다. 사우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는 중이다. 이번 사건에서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의 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정보기관 고위 관료 등을 경질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터키 경찰은 이스탄불 시내의 CCTV 검색 결과를 토대로 근교 산에 시신이 매장된 것으로 보고 집중 수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간 이견 확대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피살됐다는 의혹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집권 여당인 공화당도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다. 지난 10월11일 CNN에 따르면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밥 코커 공화당 의원은 “카슈끄지는 살해됐으며 사우디가 그랬다는 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코커는 사우디로의 미국 무기 판매가 위험하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앞서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지역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카슈끄지 피살 사건과 관련,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국의 무기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표결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 진상을 두고 전 세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이목을 끌었던 건 미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죄 입증 전까지는 유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우디 정부의 유죄를 단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사우디 정부를 일방적으로 감싸기만 했던 입장은 지난 10월18일 선회했다. 그간 카슈끄지 실종·암살 의혹에 어정쩡한 자세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관련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그의 사망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가 죽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분명히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매우 슬픈 일”이라고 답했다.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카슈끄지 사태를 다루며 파장이 커지고 있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측근 연루설도 잇따라 불거지면서 더 이상 사우디를 두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처음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도 고려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아낼 것이다”고 답했다. 외국 투자자와 기업인도 사우디 왕실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될 때까지 사우디가 주도하는 투자 건이나 국책 사업 참여를 미루겠다며 보이콧에 나섰다. 지난 10월1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터키 정부가 사우디 측에서 카슈끄지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후 외국 투자자 및 기업들이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의 관계나 국책 사업 참여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은 앞서 이날 공식 홈페이지에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우디 관광 프로젝트 이사로서의 업무를 중단하겠다”며 “버진 계열 항공우주회사인 버진갤럭틱과 버진오빗에 대한 PIF 투자 논의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카슈끄지 실종 사건과 관련한 (사우디 왕실의 개입)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서구권 사업자들이 사우디 왕실과 협업할 여지는 명백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경영컨설팅기업인 하버그룹은 지난 10월11일 사우디 왕실과 월 8만달러(9000만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개인의 보이콧 선언도 줄을 잇고 있다. 어니스트 모니즈 전 미국 에너지장관은 사우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Neom)과 관련한 자문이사 역할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샘 알트만 와이콤비네이터 사장과 닐리 크뢰스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의장은 “(카슈끄지 실종 사건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자문역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알파벳 자회사인 사이드워크 랩스를 창업한 댄 닥터로프와 조니 아이브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아예 네옴 이사회 참여 사실을 부정했다. 외국 기업의 보이콧은 사회 개혁·개방에 속도를 내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NM

이종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