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옥교수

지난달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북· 중 수교 60년 기념행사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의 예우나 북·중 정상회담결과 여러 가지 모습을 고려할 때 분명 예사롭지 않는 한반도의 미래에 새로운 지각변동의 징후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반도는 굴절과 불행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몇 차례의 핵실험은 국제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둘러싼 다자회담을 통한 국제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했었고 국내적으로 아직 생존해 있는 전쟁경험세대들에게 6.25 전쟁의 악몽을 되살리기에 충분했으며 전후 세대들에게는 막연한 전쟁불안감과 북한의 핵이면 ‘우리 것’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환상 혹은 착시를 가능하도록 하기에 충분하였다. 전후 세대들이 표출했던 그러한 궤변과 같은 환상과 착시는 쓰라린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과 그런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이 북한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대립과 세대갈등을 자아낼 수 있는 요소이기도하다.
그러나 현실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사물과 사건을 인식하는 역사적, 지적 존재이기에 특정 사건에 대한 다른 인식과 태도에 있어서 차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발전에 대한 장기적 안목으로 인식의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통해 보편적인 인식의 공감대를 확장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남북 분단은 세계적으로 이미 냉전이 종식되고, 글로벌 환경에서 국제협력이 상생과 번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고 불행한 역사의 현실이다. 단군의 자손, 같은 민족이면서 다른 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다른 경로의 발전으로 반세기가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이산가족의 아픔과 민족통일의 꿈이 회자되고, 이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 왔으나, 여전히 분단 상태이며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핵실험이 협상용이나 도발용이냐는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핵실험을 통해 세계적으로 9번째 핵보유국이 된 셈이다. 국제사회의 인정보다는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의 강도가 높아지자 북한은 “6자 회담은 영원히 없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었다.
 그랬던 북한이 중국의 북한방문과 회담을 계기로 ‘조건부로 6자회담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임을 강조했고, 북한을 방문한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공헌할 것‘이라 선언했다고 한다. 
이번 방문에서 중국은 북한에 상당규모의 무상원조를 했는데, 무상원조의 목적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민생을 돕는데 있으며, 중국의 비용으로 압록강 대교를 건설하는 데에 합의했다고 한다. 또한 이번 원 총리는 방북 기간 북한과 경제무역, 교육, 여행 분야 등 협정을 체결하고 북한과 중국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하였으며, 평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군 열사 묘를 방문했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는 ‘강대국 중국’을 선언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격 회동해 북핵 문제 등 주요 현안을 긴밀하게 논의하는 등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무상원조 제공 등 깊이 있는 대화로 과시적 결과를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북한 방문에서 파격적인 것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원자바오 총리에 대한 공항 영접 등과 같은 예우다. 6.15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공항 영접이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이 아닐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 등 대북관계가 재개되고 북핵포기 및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등의 양자협상, 남한의 ‘그랜드 바겐’ 제안 등이 제기된 상황에서 중국의 북한 방문에서 보여준 북한의 우호적인 입장 변화는 당혹감과 긴장감을 야기한다. 
중국의 북한방문과 양자 회담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영원히 6자회담은 없다고 선언했던 북한의 태도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지난 해 핵실험으로 오히려 강화된 국제적 제재는 북한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북한에게 핵은 북한체제를 유지하는 일종의 보호수단이자 국제적 원조를 촉구하는 위협수단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에서의 인정이 아니라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로 이어지게 했고, 이는 북한의 고립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인도적 지원마저 끊게 했다. 경제개발과 발전이 없이 체제의 유지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북한은 조문단 특사에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보내 새로운 대북관계를 희망했다. 뿐만 아니라 북핵 포기에 대한 북미대화를 추진하려 하면서 양자, 다자협상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어떤 체제라도 경제적 위기 앞에 초연할 수는 없다. 체제의 붕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과 무상원조에 대한 약속이다. 최근 북핵포기 문제를 둘러 싸고 있는 대외적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면 중국의 입장과 태도는 다분히 계산적이고 전략적 이다. ‘이제 조국은 강대국이 됐다’는 원자바오 총리의 말대로 개혁개방이후 중국이 보여준 평균 10%의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의 한 중심에 서 있다. 미국의 금융 위기로 중국은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압록강 대교, 나진항 개발 등과 북한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동북아 지역개발을 도모하고 ‘6자회담 조건부 복귀‘라는 결과를 유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세계적으로 과시한 것이다. 13억
인구의 경제력으로 중국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의 방북에서 보여준 북 중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의 역사학자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이데올로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21세기 자본이 끊임없이 무한 경쟁하는 시대, 이념이 설 자리는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본적인 최선의 삶의 안위나생활조차 보장할 수 없는 이념은 극단적으로 쓸모없는 낭비이며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면서 분단과 전쟁으로 서로 다른 발전경로를 거쳐 오늘에 서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9번째 핵 보유로 세계적으로 위협적인 국가로, 남한은 자본주의 국가로 내년 G20의 의장국으로 국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남한과 북한의 대치는 지속되고 있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평화는 물론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에 필수조건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북한과 중국의 긴밀한
국제공조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게 다른 위협적 요소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고 하나 미국과 한국이 배제된 북한의 북핵문제의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혹자가 걱정하듯이 ‘중국이 우리의 통일을 도울 것 같지 않습니다.‘라 했던 탄식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게 한다. 혹 반세기 전에 북한이 이념적으로 종속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이 아닌지 시름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