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즐겨보는 시청자라면 사극 속 다양한 소품들에 눈길이 갈 것이다. 철저한 고증도 필요할 것이고, 그에 따른 정교함도 요구되는 사극 속 소품들. 특히 조금이라도 옥의 티가 있다면 가차 없이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는 경우도 있기에 드라마 제작자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담양의 죽경 황인진 명인이 제작한 소품들이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해신>,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등 굵직한 대하드라마에 소품을 납품한 것은 물론 담양군으로부터 대나무공예 죽검명인 17호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고 있다.

황 명인은 단순한 죽검이 아닌 그 안에  마음과 혼을 담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담양군 봉산면에 위치한 참소리공방은 그의 보금자리이자 작업실이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이 공방의 침대, 의자, 은장도, 죽검, 노리개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이 대나무로 되어 있다. 대나무로 만든 검을 통칭 ‘죽검’이라고 하지만 양날이 있는 것은 ‘검(劍)이라고 하고 한쪽만 날이 선 것을 도(刀)라고 구분한다. 죽검은 재질이나 쓰임새에 따라 날이 선 베기용 죽검, 날이 무딘 타격용 죽검, 장식용 죽검 등으로 나뉜다. 또한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12지신의 형상을 칼자루에 조각해서 만든 12자루의 죽도를 십이지간도(十二支干刀)라는 제목을 붙여 전국공예대전에 출품한 바 있으며, 이는 일본 교토 초청 전시회에도 선보여 현지인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드라마 소품 납품 등으로 담양 홍보대사 역할도 수행
황인진 명인은 본래 전공은 의외로 공학계이다. 전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는 군 복무 후 복학하지 않고 전공과 무관한 그래픽디자인 공부를 하고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는 여러 질병에 시달리며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가망이 없다는 진단까지 받으며 한 때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뜻밖에 자연식을 통해 몸이 점차 회복되어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고 얼마 후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고향에서의 투병생활 중 한 책 속에서 죽검를 접하면서 어렸을 적 아버지가 그렇게 공들여 만들던 죽검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건강을 되찾자마자 바로 죽검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후 오랜 세월동안 전통공예의 각종 기법과 문양 등을 익힌 황 명인은 죽검에 조각이나 프린팅 등의 기법을 활용하고 수묵화를 응용하는 등 현대적 감각에 맞춘 새로운 제품 제작에 앞장서고 있다. 이를 두고 황 명인은 “전통에서 배워 새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무조건 전통방식 제품 형태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대나무의 신산업화 물결에 발맞춰 감각적이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다양한 형태의 죽제 소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작품 목표이다. 지난 2003년 사극 <무인시대>에 처음 죽검류의 납품을 시작한 그는 드라마 속 소품들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사극 주인공들과 장군, 병졸 등 출연자들이 쓰는 죽검과 화살, 소품들이 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냐?”는 문의와 함께 담양의 황 명인이 만든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그는 담양에 대한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후계자 양성의 어려움, 큰 관심 필요해
대나무 공예를 하게 되면서 황인진 명인은 대나무를 보다 각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대나무는 다른 재료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기법을 적용할 수 있기에 매우 매력적이며 늘 옆으로 뻗지 않고 곧게 자라는 대나무의 심성을 닮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기 때문. 또한 실처럼 가느다란 올로 엮어 내는 엮음식은 대나무의 결을 최대한 이용한 것으로 다른 나무에서는 흉내 낼 수 없으며 음양각 기법도 대나무에서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기에 자신의 작품 세계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각별한 대나무 사랑이 뛰어난 작품으로 승화되면서 그는 이미 전국 죽제품 경진대회 및 관광기념품 대회에서 다수 입상하는 등 재주와 기능이 뛰어난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죽검에 대해서는 그의 사랑이 각별한데 단순한 죽검이 아닌 작품성 있는 죽검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명품 죽검 한 자루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보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황 명인은 “사군자나 십이지간, 수묵화 등을 조각해 작품성 있는 죽검으로 탄생시킨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죽검이 아닌 그 안에 자신의 마음과 혼을 담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여기에 조각이나 프린팅 등의 기법을 활용하고 수묵화를 응용 접목시켜 현대적 감각에 맞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전수하기 위해 후계자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전통공예에 대한 지원이 미흡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한다. “우리의 것을 지키고 이를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행정기관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며 앞으로도 큰 관심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인진 명인. 그는 먼저 ‘된’ 사람이 된 후 그 다음에 ‘난’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한다. 최고가 되어도 늘 고개를 숙이며 겸손함을 보이겠다는 말이었지만 이미 그는 죽공예 분야의 세계 최고의 명인으로 우뚝 서 있다. NM

죽검(竹劍)의 유래(由來)와 가치(價値)
죽검은 한국의 전통자료집에 의하면 신검으로서 황제나 임금이 국제(國祭)를 모실 때나 검무를 출 때 사용되었고 황실 세자, 세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검이었으며 훌륭한 장식품이기도 하였다. 국난에는 호국무예의 무기로 쓰였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되었던 죽검은 한민족의 신검으로서 소장가치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