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들이 즐비한 서울시내 한복판에 지난 24년간 농민들의 얼과 지혜가 담긴 유물들을 보전하고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는 일에 열중하는 곳이 있다. 바로 농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농업박물관이다. 이곳은 대부분의 기업박물관들과 같이 단순히 자사 홍보를 위해서 설립된 곳이 아니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농업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규모와 시설, 그리고 소장품들의 다양함과 가치성에 놀라게 된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 역시 전문적이고 흥미롭다. 이를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는 농업박물관 김재균 관장을 만나보았다. 농경문화 계승과 발전에 대한 소신과 농촌∙농업인 사랑에 대한 그의 열변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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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균 관장 |
농업박물관은 1987년 11월 농협이 세운 농업전문박물관이다. 그동안 급속한 산업화로 빛을 잃은 농경문화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그 가치를 미리 인식하고 농업관련 자료와 유물들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연 것이다. 농업박물관 개관은 그 역사적 의미와 함께 국민들의 인식을 많이 바꿔놓는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의 주요 박물관들은 왕실이나 양반층 등 지배계층과 관련된 유물들을 주로 전시하였으나 농업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농민이라는 평민층의 자료들을 위주로 모아 전시한 곳 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한 농민들이 썼던 평범한 물건들도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2005년 현재의 서울 충정로 1가에 새로 건물을 지어 재개관 하면서 첨단 영상장비와 디오라마(Diorama(실사모형) - 전시된 유물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등의 고가 장비를 도입, 관람객들에게 시각과 청각 등 오감을 만족시키는 입체 전시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1천여 평의 전시면적에 5천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고고인류학과 출신의 농협 사원, 결국엔 농업박물관장으로
2005년 농업박물관이 재개관하면서 동시에 김재균 관장이 새 박물관장으로 부임하기 시작한다. 그 후 연간 15만 명이던 관람객이 꾸준히 늘어, 현재 농업박물관은 1년에 25만여 명이 찾는 도심 속의 농경문화 체험교육장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며, 이 중 약 3천여 명의 외국인 관람객도 이에 포함된다.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출신의 김재균 관장은 동 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친 후 ‘88년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하여 금융과 경제업무 등 농협의 기초업무를 두루 섭렵한 후, ’94년부터 10년간 홍보실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부터는 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고고인류학과 출신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농협에 입사하고, 또한 농협 직원이면서 그 중 오직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박물관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다.
첨단 과학적 시스템으로 농업유물 관리, 농업유물의 문화재 지정 성공
농업박물관은 사립박물관으로서는 드물게 항온항습 시스템과 특수 조립된 유물전시보관대를 갖춘 최첨단 시설의 수장고를 보유하고 있어, 이곳에서는 유물의 체계적 분류와 과학적 보존·연구가 가능하다. 2009년에는 소장유물 가운데 ‘두레깃발’이 서울시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받기도 했다. 이는 농업유물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꿔놓은 일대 사건으로, 농업인들의 자긍심을 부추기고 이들의 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의 발판을 마련해준 계기가 되었다. 김 관장은 앞으로도 농민들의 얼과 지혜가 스며있는 농업유물들의 문화재 지정을 계속 추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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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층 농업생활관 |
실전교육과 현장교육을 겸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
김 관장은 부임 직후부터 박물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매월 농촌지역에 가서 농사체험과 명승지 답사 중심으로 이뤄지는 ‘농촌문화체험교실’은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한편, 2009년 처음 문을 연 박물관대학 ‘두레학당’ 과정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품격 농경문화 강좌이다. 상·하반기로 나눠 1년에 2회 운영하며 강좌는 10회 정도 열리는데 고고, 역사, 인류학 등 사학계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오고 1~2회 정도의 문화유적지 답사도 실시한다. 이 밖에도 박물관 앞에 조성된 야외 체험농장에서는 거름내기, 모내기, 김매기 등 농사의 전 과정을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행사는 도심 속 농경문화 체험행사로 언론으로부터 큰 관심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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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속 농경문화 체험 |
‘문화공익사업’을 위한 열정
전시와 교육이 매일 새로워야 생명력이 있고 관람객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 관장은 늘 변화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또한, 그는 철저하게 고객중심의 정신으로 전시해설이나 교육교재 등을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다. 날이 갈수록 관람객들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전시품에 대한 안목도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 관장은 직원들로 하여금 외부기관의 위탁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내부에서도 매주 연구발표회를 갖는다. 이런 노력으로 2009년에는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1년에는 한국박물관협회 주관의 전국박물관대회에서 영예의 특별사회공헌상을 받기도 했다. 농업박물관은 농협의 사업을 통해 얻어진 수익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며 박물관 운영은 농업인조합원과 국민을 위한 공익적 사업이다. 이러한 공익사업이 농민들의 얼을 지키고 가꾸면서 동시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문화서비스로 환원이 되는 것이다. 문화 선진국을 지향하는 지금, 농협의 문화공익사업은 우리에게 대단히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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