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각본 ‘사랑이 뭐길래’ 드라마 사상 최고시청률 기록       1991년

▲ 김수현

김수현(1943~ )은 ‘언어의 연금술사’, ‘시청률 제조기’다. 그가 오랫동안 안방극장의 맹주로 군림한 원천은 1972년부터 써온 50여편의 드라마 각본이다. 김수현 드라마의 특징은 탄탄한 구성과 빠른 진행, 생생한 캐릭터로 요약된다. 특히 인물의 감정을 찌꺼기 없이 적확하게 드러내는 대사야말로 김수현 드라마의 요체이자 상징이다.
수다스러운 말투와 톡톡 튀는 속사포 대사, 게다가 배역의 감정이 듬뿍 실려 무시로 튀어나오는 ‘신조어’와 직설적인 화법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김수현 만의 개성이자 특징이다. 김수현과 오래 호흡을 맞춰온 연출자와 연기자들을 가리켜 ‘김수현 사단’이라고 부르는데, 연기자로는 이순재 김혜자 윤여정 김희애 등이 있고, 연출자로는 곽영범과 박철 등이 있다. 
김수현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1961년 부친이 위암에 걸리는 바람에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다행히 글쓰는 데는 재주가 있어 대학 1학년 때부터 상금이 주어지는 공모라면 그것이 드라마든 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응모했다.
김수현이 방송작가로 정식 데뷔한 것은 MBC 개국 7주년 기념 라디오 드라마 공모에 당선된 1968년이었다. 당선작 ‘그해 겨울의 우화’는 ‘저 눈밭에 사슴이’로 제목이 바뀌어 1968년 12월 라디오 방송을 탔으며 정소영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1969년 6월 개봉되었다.
4년 동안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하던 김수현이 TV 드라마로 영역을 넓힌 것은 1972년 5월이었다. 첫 TV 드라마는 목요연속극 ‘무지개’였다. MBC TV의 ‘새엄마’는 ‘김수현 시대’를 열어젖힌 출세작으로 총 411회(1972.8~1973.11) 방영되어 김수현에게 1973년 10월 제1회 방송상 TV부문 극본상을 안겨주었다.
김수현은 이후에도 ‘신부일기’(1975.6~1976.2) 등 여러 드라마를 성공시켰으나 모든 것이 순항하지만은 않았다. 일일드라마 ‘안녕’(1975년)과 ‘후회합니다’(1977년), 주말드라마 ‘청춘의 덫’(1978년) 등은 유부남과 미혼 여성의 불륜, 혼전 임신같은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로 예정된 방송횟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거나 조기 종영되었다.
김수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은 MBC의 ‘사랑과 진실’(1984년), ‘사랑과 야망’(1987년)이 대박을 터뜨린 1980년대부터였다. 이후 김수현은 ‘배반의 장미’(1990년)부터 무거운 주제를 벗고 과감하게 코믹 드라마에 도전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1991년 11월30일부터 1992년 5월31일까지 총 55회에 걸쳐 MBC TV에서 방영된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박철 연출)다.
빠른 극 전개와 특유의 맛깔스런 대사는 김수현의 색깔 그대로였다. 여기에 다양한 인물묘사까지 더해지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지극히 보수적인 이 사장(이순재)과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박 이사(김세윤), 남편에게 주눅들어 숨죽이고 사는 대발이 엄마(김혜자)와 현대적 가정주부 지은 엄마(윤여정)의 극명한 대칭 구조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대발(최민수)과 지은(하희라)의 사랑 싸움을 보며 남자 시청자들은 시대착오적인 ‘대발이 아버지’의 권위주의에 대리만족을 느꼈고, 여자들은 서서히 전개되는 여인들의 반란을 즐겼다.
‘사랑이 뭐길래’가 워낙 인기가 높아 주말 저녁 8시대에 각 가정의 전화통화와 수돗물 사용이 뚝 끊긴다는 보도가 잇따랐으며 김혜자가 극 중 간간이 읇조린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는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다.
‘사랑이 뭐길래’는 시청률 조사기관 ‘미디어서비스 코리아’의 조사에 의해 평균 시청률이 59.6%라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에서 과학적인 시청률 조사는 1992년 1월1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사랑이 뭐길래’는 마침 그 무렵에 방영된 덕에 시청률을 공인받을 수 있었다. 역대 시청률 2위와 3위는 1992년 10월부터 방영된 MBC의 ‘아들과 딸’(49.1%), 1999년 11월부터 방영된 MBC ‘허준’(48.3%)이다. ‘사랑이 뭐길래’의 시청률 59.6%는 케이블TV나 위성TV 등 워낙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있어 좀처럼 깨지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회차 시청률을 기준하면 ‘사랑이 뭐길래’는 2위로 내려간다. 회차 시청률 1위는 65.8%를 기록한 1997년 4월 20일자 KBS2의 ‘첫사랑’이다. ‘사랑이 뭐길래’는 1992년 5월 24일 64.9%의 회차 시청률을 기록했다.
1970년대 TBC의 ‘아씨’, KBS의 ‘여로’ 등이 방송될 때도 길거리 인적이 끊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나 그때는 방송국 자체 시청률 조사였기 때문에 신뢰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TV수상기 80만대 시대와 2000만대가 넘는 시대의 단순 비교가 어려워 큰 의미를 둘 수도 없다. ‘사랑이 뭐길래’는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1997년 중국의 CCTV에서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사랑이 뭐길래(최민수와 하희라)

김수현은 ‘사랑이 뭐길래’ 이후에도 ‘산다는 것은’(1993년), ‘목욕탕집 남자들’(1995년), ‘청춘의 덫’(1999년), ‘엄마가 뿔났다’(2008) 등 히트작을 연속 터뜨리며 “왜 김수현이 ‘드라마의 대모’인지”를 입증해 보였다.
김수현의 감각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빛을 발했다. 직접 영화 각본을 쓰거나 원작을 제공한 영화가 ‘보통여자’(1976), ‘내가 버린 여자’(1977년), ‘마지막 겨울’ 등 30여편이나 되고 장편소설도 ‘상처’(1977), ‘모래성’(1986년), ‘망각의 강’(1988년) 등 10여편에 이른다. 2008년 한국방송협회가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김수현을 처음 선정한 것은 이처럼 폭넓은 활약을 하는 김수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다.

■ ‘WWW(월드 와이드 웹)’ 첫 공개            1991년

▲ 팀버너스리

‘월드 와이드 웹(WWW·World Wide Web)'은 혁명이었다. 혁명의 첫 봉화는 영국 출신의 팀 버너스-리가 올렸다. 옥스퍼드대 퀸스컬리지 물리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가 처음 혁명의 불을 지핀 곳은 그가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스위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였다.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있는 CERN은 1954년 유럽 국가들이 과학발전을 위해 세운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연구원들만 5000명이 넘었고 전화번호도 1만명이나 등록되어 있었다.
CERN 조직의 방대함과 복잡함은 팀 버너스-리로 하여금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으로 구성된 개인용 프로그램 ‘Enquire’(1980년)를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하이퍼텍스트’란 현재의 화면과 하나 이상의 문서들이 하이퍼링크라는 연결고리로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문서형태를 말한다. 물론 당시에도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고퍼’, ‘아키’와 같은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가 있었다. 그러나 고퍼와 아키는 디렉토리 구조와 키보드로 일일이 쳐서 검색하는 방식이다보니 복잡했고 그래서 많은 정보 중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팀 버너스-리의 연구는 그가 1981년부터 3년간 CERN을 떠나있으면서 잠시 중단되었다. 1984년 9월 CERN에 다시 입사한 그는 1989년 3월, ‘Enquire’를 발전시킨 ‘하이퍼텍스트 프로젝트’를 연구소에 제안했다. 연구원들 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연구소 내에서 독자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연구하던 로버트 카일리아우가 합류하면서 연구는 속도를 더했다. 1990년 10월부터 1개월동안 NeXT라는 컴퓨터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최초의 그래픽 웹브라우저를 개발한 버너스-리는 관련 프로그램을 그와 카일리아우 컴퓨터에 분산시켰다. 그리고 1990년 12월 25일 웹 서버 ‘nxoc01.cern.ch’(나중에 ‘info.cern.ch’로 불렸다)에서 서로 통신하는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WWW’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첫 웹페이지의 주소는 ‘http://nxoc01.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였다. 다음 단계는 웹을 연구소 전체로 확대하는 일이었다. 연구원들이 많아 관리가 쉽지 않은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버너스-리는 틈틈이 강좌와 시연회를 여는 한편 CERN 회보에 열심히 글을 실었다. 웹 소식도 하이퍼텍스트 문서로 만들어 info.cern.ch에 꾸준히 올렸으며 웹 정보를 나누는 뉴스그룹(comp.infosystems.www)과 텔넷서버(info.cern.ch)도 꾸몄다.
1991년 7~8월 info.cern.ch는 매일 100회의 페이지뷰를 기록했고 웹서버는 50개로 늘어났다. 그 무렵 버너스-리는 이 세기의 발명품 이름을 짓는데 고심했다. ‘정보의 보고’라는 뜻의 ‘모이’(Moi : Mine of information), 자신의 이름과 같은 ‘팀’(Tim : The information mine), ‘올가미’(mesh) 등이 후보로 올랐으나 ‘mesh’는 ‘엉망진창(mess)’과 발음이 비슷하고 ‘MOI’는 프랑스어로 나를 뜻하는 me라는 뜻이어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보였다. 결국 그는 세기의 대혁명에 ‘지구촌을 묶는 거미줄’이라는 뜻의 ‘월드 와이드 웹(WWW)’으로 이름을 정했다.
두 사람은 첫 작품으로 CERN의 전화부를 웹사이트에 올렸다. 당시만해도 웹사이트는 명령어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웹사이트가 정보화 혁명의 첨병으로 자리잡으려면 마우스 시대를 더 기다려야 했다. 버너스-리는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발판으로 인터넷 프로그램 언어(HTML), 인터넷 주소(URL), 통신규약(HTTP)을 잇따라 선보이며 ‘WWW’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무렵 CERN과 버너스-리는 이 발명품에 지적재산권을 행사할 것인지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결국 특허출원을 포기하고 무료 공개를 결정함으로써 인류는 그에게 엄청난 빚을 지게 된다. 1991년 8월 6일, 뉴스그룹인 ‘alt.hypertext’를 통해 라인모드 브라우저가 처음 공개되고 comp.sys.next(16일), comp.text.sgml(20일), comp.mail.multi-media(22일)를 통해서 빠르게 전파되면서 세계는 ‘WWW’로 묶이는 지구촌 가족이 되었다.
버너스-리는 이 공로로 1999년 3월 타임지가 ‘20세기 20대 지성’을 발표할 때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나란히 선정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1994년 버너스-리는 WWW의 발전을 장려하고, 공개 기술을 개발하며, 표준화를 위한 월드와이드웹콘소시엄(W3C)의 창설을 주도했다. W3C는 현재까지도 월드와이드웹 정보시스템을 설계하고, 월드와이드웹의 발전 방향을 잡는 유일한 단체다.
인터넷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 버너스-리라면 이를 확산시킨 사람은 마크 앤드리슨이다. 그 무렵 웹을 성장시키는 또 다른 축인 웹 브라우저는 비올라, 마이더스, 삼바 등이 있었지만 이용법이 까다로워 인기를 끌지 못했다. 1993년 4월 앤드리슨은 웹형태의 정보를 보다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 ‘모자이크’를 개발해 무료 공개하고 1994년 11월 팀 클라크와 함께 ‘네스케이프 네비게이터’ 1.0을 발표해 인터넷 대중화에 불을 붙였다.

■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음반 ‘난 알아요’ 발표            1992년

▲ 서태지와 아이들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사회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1980년대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하는 그 길목에 서태지(1972~ )가 있었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난 알아요’가 방송된 것은 기존 대중가요의 근간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을 전주곡이었다. 이후 ‘서태지…’는 일약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고 199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당대를 풍미했다.
20살의 서태지와 20대 초반의 양현석(1969~ )과 이주노(1967~ )가 팀을 이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2년 4월 11일 방송된  MBC TV의 ‘특종 TV연예’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특종 TV연예’는 신인가수들을 등장시켜 몇몇 전문가들의 평을 듣는 코너를 신설했는데 첫 방송에서 처음 등장한 신인가수가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날 출연한 전문패널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하광훈(작곡가)은 “리듬은 좋으나 멜로디가 약하다”고 했고 양인자(작사가)는 “노랫말도 새로웠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이상벽(TV진행자)은 “섬세한 노래가 격렬한 동작에 묻혔다”고 평했으며 전영록(가수)은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라며 직접적인 평은 피했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7.8점.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렇게 데뷔했다.
전문패널들의 평가와 달리 10대와 20대 젊은이들은 정신없이 빠른 랩, 격렬하면서 유연한 춤동작,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인 가사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이후 1집에 수록된 ‘난 알아요’, ‘환상 속의 그대’는 모든 방송프로그램의 정상을 휩쓸었다. 앨범은 발매 3주만에 30만장, 두달 새 100만장이 팔려나갔다. 각종 가요차트에서도 17주 연속 정상을 석권해 대한민국 가요 사상 초유의 폭풍을 몰고 왔고 트로트와 발라드 위주였던 가요계의 질서를 마구 흔들어 놓았다.
본명이 정현철인 서태지는 중학교 2학년 때이던 1985년 말, 친구들과 첫 스쿨앨범 ‘하늘벽’을 결성했다. 서울 북공고 1학년이던 1987년 학교를 자퇴하고 그룹 ‘시나위’에 들어가 베이스를 맡아 가요계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서태지로 이름을 바꾼 그는 당대 최고의 춤꾼 이주노와 양현석을 합류시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고 그들은 곧 태풍이 되었다.
양현석은 중3 때에 백댄서로 데뷔해 박남정의 백댄서 등으로 활동한 바 있고, 이주노는 16세 때 ‘인순이와 리듬터치’의 멤버로 백댄서 생활을 시작해, 춤에 관한 한 신세대였다.
자기 표현이 강한 당시의 젊은 세대들은 1991년 소련 해체 후 기존 운동권 이념이 쇠퇴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상하는 가운데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탈 이념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며 문화적으로 ‘새 것’에 목말라했다.
‘서태지…’는 과거 어느 또래 집단보다 많은 용돈과 소비성향을 가졌으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이 거대한 10대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수년만에 문화시장의 최대 소비자로 등장시켰다. 1집 ‘난 알아요’가 청소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1집만을 국한하면 ‘난 알아요’는 댄스노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댄스가수였다. 랩이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치장을 했다고는 해도 양현석과 이주노가 백댄서로 춤을 추고 서태지 역시 함께 춤을 췄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그들은 댄스가수였다.
서태지는 분명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며 내공을 다진 로커였는데도 왜 댄스곡으로 데뷔한 것일까? 그것은 대중적 성공을 위해 로커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었다. 서태지가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은 2집(1993.6) ‘하여가’에서였다.
서태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메탈과 힙합, 국악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하여가’로 다시한번 가요계를 평정했다. 서태지가 마침내 로커의 모습을 만천하에 알린 것은 3집(1994.8)이었다.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를 통해 그때까지 적당히 감추어온 록의 기질을 송두리째 드러낸 것이다. 헤비 메탈과 전에 없이 강렬한 랩, 가볍지 않은 가사와 탁월한 편곡으로 3집 노래 역시 방송차트 1위를 점령, 이슈메이커로서의 본격적인 시발점을 이뤘다.
4집 앨범(1995.10) ‘컴 백 홈’에서는 생소했던 ‘갱스터 랩’을 선보여 음악적 실험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1집부터 4집까지 시류에 맞춰 민첩하게 변신하면서도 음악의 진보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은 덕에 4장의 음반은 모두 60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이런 성공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 서태지의 음악적 감성에 기인한 바 크지만 철저히 계산하고 포장할 줄 아는 ‘마케팅의 귀재’ 서태지의 재능도 크게 작용했다. 즉 마케팅과 스타시스템의 생리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표절시비, 결혼설, 공연윤리위와의 충돌, 악마주의 논란 등 돌발적으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자신에게 붙들어맨 것이다.
그는 팬들이 식상할 때쯤 팬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영악함까지 보였다. 1996년 1월 31일 “새장에 갇힌 새는 똑같은 노래만 부른다”는 말을 남기고 예의 과감한 몸놀림으로 팬들 곁을 떠나 미국에 몸을 숨긴 것이다.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한국의 역대 최고히트상품’을 발표하며 ‘서태지…’의 음반을 당당히 1위에 올려 서태지의 음악적 성취를 인정해주었으나 서태지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우리 가요계에 그늘을 만들었다.
서태지의 등장 후 TV 방송은 댄스없이 오직 음악만을 들려주고 싶어하는 전통적인 가수들을 깨끗이 퇴출시켜 음악의 다양성을 실종시켰고, ‘태지 열풍’을 확인한 대형기획사들은 아이돌 댄스그룹을 경쟁적으로 양산해 대중들에게 음악의 편식을 강요했다. 2000년 8월 29일, 은둔 4년 7개월만에 입국한 김포공항에는 영웅의 귀환에 환호하는 3000여명의 팬들이 서태지를 맞았고, 서태지는 귀국후 신비화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 ‘비아그라’ 시판             1998년

▲ 비아그라

1987년 미국의 화이자사는 협심증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실데나필’을 개발했다. 그런데 약을 복용한 환자에게서,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발기’ 현상이 나타나 화이자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발기’는 음경으로 들어오는 동맥이 활짝 열리고 음경에서 나가는 정맥이 가늘게 닫혀서 그 피가 남근의 해면조직을 가득 채워 음경이 곧추서는 현상이다. 반대로 ‘발기부전’은 기질적 또는 심인성 원인에 의해 음경에서 나가는 정맥이 좁아지지 않고 이때문에 해면조직에 피가 괴질 않아 남성의 페니스가 발기되지 않거나 발기상태가 지속되지 않는 현상이다.
남자가 성적으로 흥분하면 대뇌가 음경주위의 신경들에 신호를 보내 ‘NO(nitric oxide)’라는 물질을 분비하고 이 물질이 음경에 ‘c-GMP’라는 물질을 만들도록 한다. 이 ‘c-GMP’가 동맥을 확장시키고 정맥은 꽉 닫히게 하여 음경에 피를 괴게함으로써 발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c-GMP’가 생성될 때, ‘c-GMP’를 분해해 발기를 저지하는 ‘PDE-5’라는 물질도 함께 생성된다. 이 두 물질이 평형상태를 이루면 발기가 지속되는 것이고 ‘PDE-5’에 의해 ‘c-GMP’의 생성이 감소하면 발기가 중단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기부전은 생성된 ‘c-GMP’를 ‘PDE-5’가 파괴해버려 결국 혈관의 이완과 수축이 조절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는 ‘PDE-5’ 효소를 억제하는 물질이 있으면 ‘c-GMP’가 파괴되지 않고 발기가 된다는 의미가 된다. 이 사실에 착안한 화이자가 개발한 신약이 ‘PDE-5’ 억제 역할을 하는 ‘비아그라(Vigra)’다.
1997년 미국 비뇨기과학회에 보고된 화이자의 연구발표에 따르면 377명의 실험환자에게 비아그라를 복용케 한 결과 주목할 만한 발기 성공과 지속이 있었고, 성적으로도 만족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화이자는 당초의 이름 ‘실데나필’ 대신 ‘활력(Vigor)’이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처럼 넘치게 해준다는 의미로 ‘비아그라(Vigra)’로 명명한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시판 허용을 신청했다.
잠자리가 두려운 남성들에게 ‘시판 허용’이라는 낭보가 전해진 것은 1998년 3월 27일이었다. 이후 비아그라는 ‘마법의 푸른 약’으로 불리며 ‘고개숙인 남성’들에게 발매 첫 해에만 무려 2700만정이나 팔려나갔다. 이 덕분에 비아그라는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해 ‘1998년 최고의 상품’으로 꼽혔고, 화이자사는 포천지에 의해 ‘가장 존경받는 미국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화이자의 주가 역시 비아그라 발매 이전에 80달러에서 발매후 130달러로 껑충 뛰었다.
2008년까지 10년동안 비아그라를 처방받은 사람만 전세계 120개국 3000만명에 달했다. 인터넷 등 불법경로를 통해 비아그라를 손에 넣은 수백만명까지 합하면 실제 비아그라 복용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10월 15일부터 25mg과 50mg의 알약이 판매되어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발기부전 환자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또한 자신의 성트러블에 대해 의사와 상담하는 남성이 늘어나면서, 발기부전 증상을 초기 증상으로 하는 심장발작이나 뇌졸중 등을 미리 발견할 확률이 높아졌고, 폐동맥이 확장되어 혈압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져 폐동맥 고혈압 환자도 비아그라를 치료제로 복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남여간에 부드러운 애무나 로맨틱한 정서의 교감이 사라져 30분~1시간 전에 비아그라를 복용한 뒤, 때만 기다리고 있는 짐승처럼 성행위만 갖는다는 것과, 노인이 되어도 비아그라로 인해 불륜이 한층 쉬워지면서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약을 복용한 협심증 환자 중 170명이 1년 만에 죽어 약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졌다. 복용후 두통을 호소하거나 안면홍조 현상을 보이는 환자도 있었고 시야장애, 현기증, 근육통 환자도 발생했다. 그런데도 비아그라가 워낙 인기가 높아 유사제품이 속속 발표되었다.
‘시알리스’(성분명 타다나필), ‘레비트라’(성분명 발데나필)가 선을 보였고 누에를 원료로 한 한국형 비아그라 ‘누에그라’도 시판되어 관심을 끌었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기능 촉진제 ‘시아그라(SheAgra)’도 개발되었다.
화이자와 상관없이 ‘비아그라 치즈’, ‘비아그라 아이스크림’, ‘비아그라 칵테일’ 등도 등장해 실소를 자아냈다. 국내에도 이태원에 ‘비아그라’라는 나이트클럽이 인기를 끌었고 PC통신에서는 비아그라를 풍자한 ‘~그라’ 시리즈 유머가 만발했다. 발기가 지속될 때 좋다는 ‘그만 죽그라’, ‘애배그라(불임증치료제)’, ‘밥묵그라(식욕촉진제)’, ‘또 싸그라(변비치료제)’, ‘자그라(불면치료제)’ 등이 당시 PC통신에서 떠돈 우스개다.

■ 세기말의 ‘Y2K’ 소동            1999년

▲ y2k

‘Year’(년)와 ‘Kilo’(천)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Y2K’는 연도를 끝 두 자리로 인식하는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컫는다. 1965년 이전에 생산된 컴퓨터들은 연도를 인식할 때 4자리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 메모리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연도표기 4자리 중 2자리만 인식하도록 컴퓨터를 설계하는 바람에 2000년을 1~2년 앞둔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세계는 생각지도 않았던 Y2K 홍역을 톡톡히 치러야했다. 생활 깊숙이 파고든 컴퓨터가 인간이 의식하지 않는 동안 어느덧 괴물이 되어버려 인간에 첫 경고성 신호를 보낸 것이다.
Y2K 문제 해결을 위해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한마디씩 거드는 가운데 일부 해외 언론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라디오, 건전지, 연료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안내하는가 하면, 아시아 국가들이 Y2K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제2의 경제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쏟아냈다.
특히 미국에서는 비상식량과 장비를 사는데 무려 2만달러를 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시를 떠나 피난을 떠난 사람도 있었으며 의료서비스가 중단될 것에 대비해 민간치료법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생존캡슐을 만들어 7000달러에 판매한 사람, 안전한 캠핑장소를 임대하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나는 등 일부에서 장삿속 챙기기가 극성을 부렸다.
미국 등 선진국의 IT 관련기업들은 Y2K 특수가 가져다 준 사상최대의 매출증가로 희색이 만연했다. 유엔 산하 국제 Y2K 협력단에 따르면 1999년 1년간 지구촌이 Y2K 문제 해결비용으로 쏟아부은 자금만 1조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관련 업종이 그만큼의 호황을 누린 셈이다. 우리 정부도 13개 중점분야의 Y2K 대처에 1조 1000억원을 투입하고, 개별 기업들도 적지않은 비용을 들인 것으로 미루어 Y2K관련 기업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가며 2000년 1월 1일의 새해를 맞았으나 Y2K로 인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초조한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려온 전세계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 2000년에 태어난 신생아 수천명의 연령이 100세로 표기되고, 일본에서 2000년 2월 29일을 3월 1일로 잘못 인식하는 윤년 Y2K 문제로 1000대 이상의 현금자동 지급기가 일시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것 말고는 전세계에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3대 중점분야에서 사고는 없었고 자영업, 중소 병의원, 중소기업체 등에서 모두 16건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했을 뿐이다. 그러자 Y2K가 과대포장이었다는 주장과 대응을 잘했기 때문에 무사히 넘어간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비판적인 측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처럼 쓸데없는 겁을 줘서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며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의 Y2K 경고가 상업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혼란 확률이 낮을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의 경고가 계속 이어진 것은 Y2K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소프트웨어나 컴퓨터에 버그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처럼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긍정하는 측은, 각국의 정부와 국민이 정보화의 역기능들을 되짚어보고 대비하도록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Y2K 사태를 순기능으로 해석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는 등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했기 때문에 대란을 막을 수 있었고, Y2K 덕에 각국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이 크게 함양되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인류가 그동안 정보화를 외치면서도 그 이면에 도사린 숱한 역기능들을 무시해왔기 때문에 “Y2K 사태는 정보화시대 문턱에서 치른 인류의 성인식”이라고 정의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