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 첫 전국 재배…쌀 자급자족 초석 다져     1972년

▲ 1972년 통일벼

우리 민족에게 식량부족은 피눈물이었다. 식량자급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도, 국가안보도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게 1963년 12월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의 인식이었다. 춘궁기인 보릿고개 때만 되면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연명하거나, 미국의 잉여식량 무상원조로 배고픔을 달랠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식량자급을 하려면 품종개량이 급선무였으나 당시의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도 낼수 없었다. 따라서 품종개량과 더불어 해야 할 일이 식량절약을 위해 머리를 짜내는 일이었다. 그 첫 시도가 1967년부터 시작된 혼·분식 권장정책이었다. 1968년엔 음식점의 25% 혼식이 의무화되었고, 1969년부터는 매주 수·토요일 11시~17시까지 쌀을 원료로 한 음식판매가 금지되었다.
1970년부터는 전국적인 쥐잡기 대회를 벌여 쌀 한 톨이라도 아끼려고 몸무림을 쳤다. 쥐잡기가 정부 주도로 시작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였지만 군사작전을 방불케 조직적 거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1970년대 초 통계로 우리나라의 쥐를 1억 마리로 쳤을 때 쥐들이 축내는 양곡이 연간 32만t에 달했다. 1970년 1월 26일 시작된 제1차 쥐잡기 대회에서 ‘4300만 마리를 잡아 106만6천 석의 양곡 손실 방지 효과를 올렸다’는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가히 놀랄 만한 효과다.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한국의 녹색혁명은 미국의 록펠러·포드 재단이 1960년 필리핀에 설립한 국제미작연구소(IRRI)로부터 출발한다. 1964년 7월부터 이곳에서 연구하던 허문회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는 1966년 IRRI 최초의 품종으로 발표된 ‘IR8’ 볍씨에 주목했다. ‘IR8’이 발표되기 전인 1965년 11월에 내냉성(耐冷性)이 강하고 미질이 좋은 일본의 ‘유카라’와 미질이 푸석푸석한 대만 재래종 ‘TN1’를 교배(IR568)했다가 ‘잡종 불임’이라는 실패를 경험했던 허 교수는 1966년 3월 이 ‘IR568’에 ‘IR8’을 교배하는데 성공, 그해 6월 20여 개체의 3계 잡종 종자(F1·1대 종자)를 얻었다. 이 종자에는 IRRI의 667번째 교배라는 뜻으로 ‘IR667’이라는 교배번호가 부여되었다.
일반적으로 쌀은 자포니카계(일본계)와 인디카계(인도계)로 분류한다. 자포니카계는 찰지고 밥맛이 좋은 대신 수확량이 적은 반면 안남미라 불리는 인디카계는 푸석푸석해 밥맛이 없는 대신 수확량이 많았다. 일본의 ‘유라카’는 자포니카계였고 대만의 ‘TN1’은 인디카계였다. ‘IR667’은 자포니카계와 인디카계의 잡종이지만 인디카계에 속했다.
‘IR667’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필리핀과 한국을 번갈아가며 실험재배를 반복한 끝에 1969년 여름, 종자가 우수한 6계통(수원 213호~218호)의 F7을 선발할 수 있었다.
특히 1970년 여름 IR667-98-1-2(F9)가 최고의 다수확 품종인 것으로 입증되어 1971년 초 ‘통일벼’ 품종으로 정식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언론은 통일벼를 ‘기적의 볍씨’라며 크게 보도했으나 한국인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지적도 많았다. 그러나 1971년 2월 5일 청와대에서 가진 통일쌀밥에 대한 품평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색깔-좋음’, ‘차진 정도-보통’, ‘밥맛-좋음’이라고 평가하고, “비싼 돈 주고 외국쌀 사 먹는 처지에 밥맛 따지게 됐어?”라고 일갈하면서 맛이 없다는 불만은 잠잠해졌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는 통일벼를 통해 한국의 녹색혁명을 이루자는 돌격신호와도 같았다. 1971년 전국 550개소 2750ha에 처음 통일벼가 심어지고 재래종보다 훨씬 많은 1단보(10ha)당 평균 500.9kg이 출수됨으로써 다수확의 가능성이 확인되자 정부는 이듬해 더 많은 지역에 통일벼를 심었다. 1972년은 쌀자급 달성에 초석을 다진 우리 벼농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역사적인 해였다.
미질 불량을 이유로 농민들이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일선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독려와 강제는 전국 5174농가 18만7471ha에서 통일벼가 재배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운이 안따랐는지 그해 6~7월 한발, 8월~9월 수해 및 저온, 9월 우박 등의 자연재해가 겹치는 바람에 수확을 하기도 전에 수확량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보도가 잇따랐다. 통일벼와 함께 재래종도 피해를 입었으나 언론은 유독 ‘기적의 볍씨’의 좋지 않은 작황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막상 추수를 마치자 통일벼는 1단보(10ha)당 평균 386kg을 수확, 재래종의 321kg에 비해 20% 이상 증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다수확 품종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통일벼만 자연재해를 당한 것이 아닌데도 농민들은 정부의 강제와 권유로 통일벼를 심었으니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이 때문에 ‘기적의 볍씨’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훼손되어 통일벼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했으나 박 대통령이 “1년 더 심어보고 그때 가서 재평가하자”고 결론을 내린 덕에 통일벼는 1973년에도 전국적으로 재배될 수 있었다. 다만 재배면적은 1973년보다 35%나 줄어든 12만1179ha로 축소되었다. 다행히 1973년엔 1단보당 481kg을 생산해 재래종(350kg)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1974년 역시 통일벼 재배(18만 900ha) 지역에서 대풍을 기록한 덕에 쌀 수확량은 3086만섬을 넘어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3000만섬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유신, 밀양23호, 수원264호, 노풍 등 신품종들이 잇따라 개발·보급되면서 1975년엔 22%의 면적에서 단보당 평균 503kg을 생산하고 3242만섬을 기록, 마침내 쌀 자급의 원년으로 기록되었다. 1976년엔 44%의 면적에서 3596만섬을 기록, 단군 이래 최고 수확량을 기록했고, 1977년엔 4170만섬을 넘어서 사상 처음으로 4000만섬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우리 민족이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 경험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넘쳐나는 통일벼 덕분에 14년만에 쌀 막걸리가 허용(1977.12.8)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쌀 48만6000섬을 빌려주기까지 했다. 8·15 해방후 수없이 겪어왔던 미곡 부족과 쌀 파동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비로소 ‘주곡 자립’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이후 수년간 도열병과 냉해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고는 계속 늘어나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고, 밥맛이 떨어지는 통일벼의 단점을 보완한 수확량 좋은 품종이 잇달아 개발되면서 1990년엔 장려품종에서 제외되고 1992년부터는 정부가 수매를 중단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년 동안 주곡자급 달성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다하고 명예롭게 퇴진한 것이다.

■중동건설 붐          1973년

▲ 1973년 중동 건설 현장

베트남전이 끝나면서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했던 국내 건설업체가 새로운 무대로 삼은 것은 중동이었다. 당시 중동은 유가급등 덕에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도로·병원·항만 등 인프라 공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 건설업체들은 베트남에서 닦은 경험과 기술·인력·장비들을 중동 땅에 총동원했다. 당시 우리 경제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난데다 오일쇼크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정부는 이 시련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의 중동진출을 총력 지원했다.
중동 땅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기업은 건설 외길만을 걸어온 삼환기업이었다. 국내 건설이 걸음마 단계에 있던 1959년, 삼환의 최종환 사장이 해외 건설시장을 살피기 위해 3개월동안 세계를 둘러본 일은 건설업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 여행은 국내 건설업의 해외진출을 개척한 커다란 전환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1966년 4월 베트남에서 해외건설을 시작한 삼환은 1972년 사우디에 진출, 두차례의 공사입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해 세계시장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삼환은 1973년 6월 세 번째 도전만에 2427만 달러의 공사 수주에 성공, 한국 건설업체로는 처음으로 중동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사우디의 얀부~바다간 고속도로 7공구 164km의 공사가 우리 건설업체의 중동시대를 연 첫 공사였다.
그동안 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건설에 경험을 쌓아오던 국내 건설업체들도 베트남의 패망을 전후로 속속 중동으로 진출했다. 1974년 남광토건, 신한기공에 이어 1975년 대림산업, 신원개발이 중동에 진출했고 1975년 10월에는 현대건설이 그때까지 국내 건설업체가 수주한 해외공사로는 최대규모인 1억 4460만달러짜리 바레인 수리조선소 건설공사를 수주하는 등 중동 곳곳에 한국의 깃발을 꽂아나갔다.
1976년 2월엔 역시 현대건설이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로 일컬어지던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지역 신항 건설공사를 9억 3000만달러에 수주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액수는 1975년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17%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를 계기로 1976년 한국해외건설의 산실인 해외건설협회가 탄생하게 된다. 해외건설 면허제도의 탄생을 낳은 해외건설촉진법이 발효된 것도 이즘의 일이다.
해외건설촉진법은 국내 건설업체들이 수주한 공사에 대해서는 국내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지급보증을 서주도록 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또 신규시장을 개척한 건설업체와, 외국 선진업체와 합작 시공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도급허가 우선권을 주도록 했다. 이처럼 전폭적인 지원에 대해 재무부 등에서는 반대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반대의견을 무마하며 지원한 덕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해외건설 면허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바람에 머지않아 국내 업체간 과당 해외경쟁을 촉발시키고 덤핑수주의 양산을 낳는 등 부작용도 초래한다. 그래도 중동건설 붐 덕에 연간 수주액은 1973년 처음으로 1억 7400만달러를 기록하더니, 1976년엔 25억달러, 1978년엔 81억달러로 불어나고 1981년엔 세계 33개국에서 270건의 공사를 수주해 136억달러의 실적을 기록,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외건설 강국으로 부상했다.
1983년엔 동아건설이 36억달러의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를 수주하는데 성공, 기네스북에 오르며 해외건설의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중동 붐도 1984년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1982년 133억달러였던 수주액은 1984년 101억달러, 1985년 47억달러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엔 16억달러로 내려앉아 1992년까지 계속된 침체기를 맞았다. 유가하락으로 오일달러가 줄어든 중동 국가들이 건설투자를 줄인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지만 한국 건설업체들의 기술적인 한계도 일부 작용했다. 후유증이 심각했다. 악성 미수금이 늘어나면서 일부 업체는 도산 또는 은행관리에 들어갔고 증시에서는 사고뭉치 취급을 받았으며 건설업체에 대한 이미지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잠시 도약하는가 싶더니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다시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4년부터 다시 중흥기를 맞은 해외건설은 2005년 108억달러에 이어 2006년엔 178개사가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49개국에서 326건, 164억 6800만달러를 수주해 해외건설 사상 최고기록을 달성했다.

■도널드 조핸슨 330만년 전 ‘루시’화석 발견      1974년

▲ 1974년 루시 화석

1969년 프랑스의 젊은 지질학자 모리스 타이에브가 에티오피아의 하다르 계곡에서 코끼리뼈들과 코뿔소·돼지의 화석 등을 발견했다. 하다르 계곡은 타이에브가 고대 호수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에티오피아의 아와시 계곡을 뒤지다가 계곡 북동쪽 끝에서 발견한 계곡이다. 코끼리뼈들을 파리로 가져가 연대를 측정해보니 300만년이나 된 오랜 화석이었다.
그때까지 발견된 호미니드 화석 중 300만년 전 것은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이에브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도널드 조핸슨에게 도움을 청했다. ‘호미니드’는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직접적 조상은 아니지만 인간의 특징을 많이 갖고 있는 수백만년 전의 초기 원인(猿人)을 말한다.
1972년 4월 타이에브와 함께 하다르 계곡으로 들어간 조핸슨은 1973년 10월 그곳에서 넓적다리뼈의 아래쪽 끝 부분을 발견했다. 그 옆에서 발견된 무릎관절에서 나온 둥근관절돌기 조각을 맞춰보니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조핸슨은 그 뼈가 원숭이의 무릎뼈일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혹시 원인의 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지역의 한 무덤에서 사람의 넓적다리뼈를 파내 비교해보았다.
넓적다리뼈가 같은 모양임을 확인한 그는 그 넓적다리뼈를 가지고 미국의 한 생물인류학자를 찾아갔다. 그 학자는 뼈의 주인공은 호미니드이고 키는 90cm 정도로 침팬지보다 가벼운 여성이며 직립보행을 했음을 알려주었다. 연대측정 결과 300만년~350만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 조핸슨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이 넓적다리뼈로 걸었던 호미니드는 인간의 직계조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호모’였을까 아니면 남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등지에서 발견된, 인간의 혈통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거리가 있으면서도 인간에 가까운 원인(猿人)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을까?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뼈대의 주인공은 ‘호모’가 아니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다.
1974년 11월 조핸슨 탐사대는 또다시 아와시 계곡에서 팔뼈 부분, 작은 머리뼈의 뒷부분, 넓적다리뼈 부분, 등뼈, 골반뼈 부분, 갈비뼈들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놀라웠던 것은 이 모든 뼈대들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개체가 발견된 지층을 칼륨·아르곤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해보니 330만년 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계속된 작업을 통해 몇백개의 뼛조각이 추가로 나왔다. 이렇게 발견한 뼈는 사람의 뼈 가운데 20~40%나 되었다. 이처럼 많은 원시 개채의 뼈대가 발견된 적은 그때까지 없었다. 사자(死者)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기 때문인지 뼈대 상태도 좋았다. 평화롭게 죽고 모래와 진흙에 덮인 뒤 퇴적하는 흙더미에 짓눌려 화석으로 변했다가 330만년이 지나 폭우에 쓸려 땅위로 드러난 것이다.
화석의 두뇌는 작았지만 직립보행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골반으로 보아 뼈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팔이 긴 것으로 보아 나무타기를 잘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키는 120cm로 작았으며 사랑니가 다 자라고 닳은 흔적으로 보아 성인임을 알 수 있었다. 척주가 변형된 것은 관절염이나 다른 뼈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핸슨 탐사대는 어느날 발굴 캠프에서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마침 그때 카세트 테이프에서 비틀스의 노래 ‘다이아몬드와 함께 있는 하늘의 루시’가 들려왔다. 순간 330만년 전 여성의 이름은 ‘루시’로 지어졌다. 이후에도 그곳에서 뼈는 계속 발견되었고 뼈를 모두 모아보니 적어도 13명은 되는 집단의 뼈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최초의 가족’으로 불린 그들 역시 루시와 같은 종임이 밝혀짐으로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학명을 얻게 되었다.
2000년에는 에티오피아 디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살짜리 여자 아기도 루시와 같은 종으로 확인되어 ‘셀람’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셀람 유골은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두개골과 윗몸통, 팔다리 주요 부위 등을 토대로 2006년 복원되었다. 루시는 1992년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즉 ‘아르디’라는 고대원인 유골이 발견되어 440만년 전에도 인간에 가까운 원인이 존재했음이 드러날 때까지 20년 동안 인류의 특질을 지닌 최초의 원인(猿人)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20년동안 세계의 모든 교재들에는 ‘루시’가 모든 인류의 조상으로 기록되었다.

■세계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1978년

▲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

1978년 7월 25일, 영국의 올드햄 병원에서 2.6kg의 건강한 여아(女兒)가 태어났다. 세계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紙)와 이브닝 뉴스지는 각각 “IT’S A GIRL(그것은 여자다)” “SUPER BABY(슈퍼 베이비)”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그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자궁 외 임신으로 난관이 손상된, 그래서 9년 동안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레슬리 브라운과 남편 존 브라운이 불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은 사람은 케임브리지대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와 올드햄 병원 산부인과 의사 패트릭 스텝토였다. 두 사람은 1966년부터 공동연구를 하며 최소한 100번 이상의 실패를 경험하긴 했어도 불임연구에 관한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였다.
스텝토는 여성 불임의 원인 중 하나인 나팔관이 막히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었고, 에드워즈는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런 연구 끝에 1977년 11월부터 4명의 산모가 연속적으로 임신에 성공, 마침내 시험관 아기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연구팀이 레슬리의 난소에서 추출한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수정란을 48시간 뒤 레슬리 자궁에 착상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브라운이 세상에 태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던 것과 달리 4명 중 1명은 21주째에 유산되었고 다른 1명은 유전적 이상으로 유산시켜야 했다. 남아있는 2명 중 브라운은 예정보다 3주 빨리 제왕절개수술로 세상에 태어난 덕에 ‘세기의 아기’로 불릴수 있었다.
‘시험관 아기’는 올더스 헉슬리가 공상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 경고했던, 아기들이 시험관 속의 용액에서 대량생산되는 악몽의 첫 단계가 비로소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지만 당장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전세계 부부에게는 기적이었고 축복이었다. 그래서 브라운의 탄생을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와 비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당초 수술비가 없어 쩔쩔매던 브라운 부부는 ‘시험관 아기’ 덕에 곧 큰 돈을 벌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브라운이 태어나기 전, 브라운의 탄생스토리를 영국의 한 신문사에 독점 게재하는 조건으로 미리 61만 7000달러(약 3억 1000만원)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고, 세계 각국을 돌며 전세계 불임부부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동안 신(神)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비밀 가운데 일부가 드러나도록 한 ‘시험관 아기’에 대해 윤리적 논쟁이 없을 수 없었다. “과학기술의 놀라운 성과” “세계 불임부부의 고민을 해결해 준 인류의 진보”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신의 의지를 거스르는 사악한 실험”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신성해야 할 출산의 과정을 조잡한 기술로 농락했다”고 말했고, 바티칸 교황청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근원적 악”이라며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일부 과학자들도 위험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실험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한번 성공한 ‘시험관 아기’ 실험은 전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루이스의 4살 어린 여동생 나탈라도 시험관 아기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최초’가 갖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브라운은 건강하게 살아남아 2006년 12월 아들을 자연출산하는데 성공, 또 다시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험관 아기는 1985년 10월12일 서울대병원 장윤석 교수팀에 의해 태어난 천희(여), 천의(남) 이란성 쌍둥이였다.  자궁외 임신으로 난소 및 나팔관 절제 수술을 받아 임신이 불가능해진 천근엽·서정숙씨 부부가 장 교수를 찾은 것은 1984년 10월이었다. 부부는 배란유도, 난자흡입 및 배양, 수정, 배아의 자궁 내 이식 등 5단계를 무사히 마치고서야 1985년 2월25일 체외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아기가 각각 2.63kg, 2.56kg의 쌍둥이였다.
윤리적 논쟁에도 시험관 아기는 전세계 불임부부의 유일한 희망으로 관심을 끌었으나 점차 아기 제조산업이 생겨나고 정자와 난자가 비공개적으로 거래되며 임신을 대신해주는 대리모까지 등장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딸의 난자와 사위의 정자를 수정시킨 수정란을 친정 어머니의 자궁을 빌려 낳는 일까지 벌어져 윤리 문제를 더욱 촉발시켰다. 

■‘워크맨’과 SONY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           1979년

▲ 1979년 워크맨 최초 모델

‘SONY’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이 설립된 것은 1946년 5월 7일이다. 직원수 20명에 불과한 이 작은 공장의 산파는 학생 때부터 발명가로 유명했던 이부카 마사루(1908~1997)였다. 창업 동지 중에는 13년 연하의 모리타 아키오(1921~1999)도 있었는데 그는 훗날 ‘SONY’의 국제화를 이끈 경영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부카가 모리타를 처음 만난 것은 민간인으로 잠수함 탐색장치를 개발하고 있던 태평양전쟁 막바지 때였다. 당시 모리타는 나고야에서 제일가는 양조회사 아들로 태어나 오사카제국대 물리학부(1944년)를 졸업하고 해군중위로 복무 중이었다. 종전 후인 1945년 10월 이부카는 도쿄통신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라디오를 수립하거나 개조하는 일을 했다. 모리타가 합류한 것은 회사가 도쿄통신공업이라는 주식회사로 바뀔 때였다.
도쿄통신공업은 1950년 1월 일본 최초로 ‘테이프 레코더’를 생산함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1953년 도약의 계기를 맞았다.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사(WE)에 2만 5000달러를 주고 트랜지스터 라이센스권을 따낸 것이다. 그러나 기술을 제휴한 것이 아니다보니 공장의 설계도면은 커녕 공장 안에서 메모도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954년 WE로 파견된 도쿄통신공업의 연구원은 몇 개월동안 WE 공장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눈으로 공장의 모습을 메모한 뒤 호텔로 돌아와 설계도면을 작성해 도쿄로 보냈다. 그러면 도쿄의 기술팀은 이 설계도면을 토대로 공장을 건설했다.
이런 노력 끝에 겨우 트랜지스터를 생산하는데 성공하고 다음 단계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준비하고 있던 1954년 12월 미국의 리전시가 세계최초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시판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망연자실한 가운데 도쿄통신공업도 1955년 1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했다. 비록 세계 최초라는 영예는 빼앗겼지만 리전시의 라디오가 다른 회사의 트랜지스터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비교하면 조금도 꿀릴게 없었다.
모리타는 1955년 3월 ‘SONY’ 상표가 부착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팔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어느날 모리타에게 한 대형시계 제조업체로부터 10만대의 주문자부착상표(OEM)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소니의 총자산 규모보다 많은 액수의 제안이고 본사 역시 제안을 수용하라고 했지만 모리타는 ‘SONY’를 독립적이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거절하고 귀국했다. 모리타는 훗날 은퇴회견에서 “브랜드를 고수한 당시의 의사결정을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모델명 ‘TR-55’)가 판매를 시작한 것은 1955년 8월이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고 진공관 라디오에 비해 성능도 현격히 뛰어나지 않아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다행히 성능이 개선된 모델이 속속 개발되면서 판매에 탄력이 붙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모델은 1957년부터 시판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TR-63’이었다. 1만 3800엔의 가격은 당시 일본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임금에 해당했는데도 불티나게 팔렸다. ‘SONY’ 브랜드가 당당히 부착된 ‘TR-63’은 ‘포케터블 라디오’라는 이름이 붙여져 처음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는 소니의 승리였고, OEM을 거부했던 모리타의 승리였다. ‘포케터블(pocketable)’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이란 뜻의 일본식 조어였는데도 오래지 않아 미국의 영어사전에까지 실렸다.
1958년 새해 벽두에는 회사명까지 ‘소니’로 바꿔 ‘소니 신화’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최초의 트랜지스터 TV(195년 12월)와 트랜지스터 VTR(1961년)을 개발한 소니는 1970년 9월 17일 일본 기업으로는 최초로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기쁨을 누렸다.
모리타는 1971년 이부카의 뒤를 이어 사장에 오르고 1976년 회장으로 부임했다. 그때부터 “큰 것을 작게 만들어서, 회사를 크게 만든다”는 소니의 원칙이 확립되었다. 1978년 가을, 이미 70세가 된 이부카는 미국으로 출장을 가기전 비행기 안에서 음악을 들을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개발팀은 이부카의 요청대로 녹음기능을 삭제하고 재생기능만 있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으로 음악을 듣고 있던 모리타의 가슴속에서 비즈니스 감각이 요동쳤다.
1979년 2월 모리타는 여름방학 전인 6월까지 상품화할 것을 지시했다. 1999년 포천지는 그때 모리타의 판단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영결단” 중 하나로 평가했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미국의 벨연구소가 세계최초로 만들어낸 녹음 기술과 네덜란드 필립스의 콤펙트 카세트 제조기술이 이미 상용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기술을 응용해 녹음기를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화하고, 소리를 녹음하는데 사용하던 녹음기를 단순히 음악 등 소리를 재생해 듣는 제품 즉 ‘헤드폰 스테레오’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낸 것은 ‘소니’였다.
신제품의 이름이 ‘워크맨(walkman)’이라고 지어졌을 때 영어 문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소니’의 해외지사에서도 이름이 이상하다며 ‘사운드 어바우트’(미국), ‘스토어웨이’(영국), ‘프리 스타일’(스웨덴)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워크맨의 이름이 점차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내외 모두 ‘워크맨’으로 통일되었다. ‘워크맨’이란 단어도 1981년 프랑스 사전에 실리고 1986년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 수록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소니는 ‘포케터블’에 이어 ‘워크맨’까지 해외 사전에 등재시키는 위력을 발휘했다.
창립 33주년을 기념해 3만 3000엔으로 가격이 정해진 가운데 1979년 7월 1일부터 파란색과 은색의 외장을 갖춘 ‘워크맨’(모델명 TPS-L2)의 발매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별 반응이 없었으나 8월부터 주문이 폭주, 첫 생산량 3만대를 순식간에 팔아치웠다.
언제 어디서든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워크맨의 매력에 젊은층이 열광하면서 “음악은 실내에서 감상하는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이는 소니 브랜드가 세계를 제패하는 시작이기도 했고, 1980년대 서구시장을 휩쓴 ‘메이드 인 재팬’의 첨병이기도 했다.
‘워크맨’은 10년 뒤 1000만대를 돌파한데 이어 1992년 1억대, 1995년 1억 5000만대가 팔렸다. 이것말고도 세계기업 사상 수많은 신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소니는 ‘모방의 일본인’이라는 통념을 거스르고 일본의 자존심을 지켜온 기업이기도 하다.
 ‘소니’는 1993년 모리타가 뇌졸중으로 은퇴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카리스마의 부재에 1994년 일본 최초로 도입한 ‘컴퍼니 제도’의 실패가 침체를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1998년 미국의 ‘콜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한 것도 화를 키웠다. 콜럼비아 영화사는 매년 수백억엔 단위의 적자를 냈고, 이 적자는 부채로 쌓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일본 국내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몰락이 본격화되었다. 결국 2001년 애플컴퓨터의 ‘아이팟’까지 등장함으로써 워크맨의 신화는 추억이 되었고, 전체 매출액까지 2002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삼성전자에 뒤처지는 수모를 당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