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대국을 꿈꾸며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고, 우리의 부력은 배불리 먹을 만하면 족하다. 다만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윤담 기자 hyd@

수많은 전쟁과 식민지배, 가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자존감을 지켜준 것은 우리 문화의 힘이었다. 전 세계 대중은 한국문화를 매개로 소통·공감하며, 글로벌 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인다. 이를 실현하는 일이 문화외교다.

‘해남의 감성 숙소’로 재탄생한 100년 고택
한동인 유선관 대표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년고찰 대흥사 경내에 자리한 유선관은 111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관이다.

▲ 한동인 대표

1914년 대흥사가 수도승이나 신도의 객사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이곳은 100년이 넘는 고택으로 대중에게는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 등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후반 민간에 인수돼 여관으로 운영되다가 힘들어지자 대흥사가 문화재로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사들인 후 다시 민간에 위탁 운영되는 신세가 되어 3년간 방치되기도 했다. 이에 해남 출신 사업가인 한동인 대표가 젊은 문화기획자, 건축가와 손잡고 유선관을 ‘해남의 감성 숙소’로 재탄생시켰다.

한동인 유선관 대표는 “유선관이 가진 시간적, 장소적 아취가 만들어 낸 무게감 속에 자연스럽게 생기와 사랑스러움을 더하고자 했다”면서 “장소가 주는 에너지가 특히나 인상적인 이곳에서 투숙객들이 단순한 숙박이 아닌 도시에서 벗어난 진정한 쉼, 살아있는 명상을 얻기를 바랐다”고 말한다. 이에 한 대표는 100년이 넘은 한옥의 골조와 외관을 그대로 지키면서도 투숙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내부 시설을 현대 생활양식에 맞추어 레노베이션을 완성했다. “유선관을 운영하며 억지로 지켜내려거나 과격하게 혁신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한 대표의 말처럼 유선관에 놓인 돌 하나, 나무 하나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예전 높은 담장을 허물고 딱 옆의 계곡을 가리지 않을 만큼, 그리고 위험해 보이지 않을 만큼 담장을 올려 낮지만 안정감이 든다. 테이블과 벤치도 돌인 듯, 나무인 듯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는 정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옛 정취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차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고,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 대롱에 연결돼 물확에 담겨 흐른다. 이것까지도 옛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유선관 마당 바닥에도 배수구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리모델링 시 우물을 만들듯 마당을 다 파서 돌을 깔고 그 위에 마사토를 얹었다. 과거 선비들의 사랑채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었는데, 이는 비가 오면 진흙 바닥의 물웅덩이가 생기지 않도록 비가 오면 바닥으로 빗물이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선조들의 현명한 지혜다. 결국 고고한 선비처럼 정갈한 유선관의 품위는 땅속부터 품어져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통해 유선관을 널리 알렸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이러한 유선관의 변화에 대해 “30여 년 전 유선관은 누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유럽의 고성에 묵는 경험과 같은 멋진 한옥 스테이가 된 것”이라며 기뻐했을 정도다.

과거와 현대 잇는 공존의 힐링 공간’으로 극찬받는 명소
과거 <장군의 아들>, <서편제>, <천년학> 등 10여 편의 영화 촬영지로서 명성을 얻었던 유선관.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연환경보전지구가 되면서 ‘불법 숙박업소’이라는 오명을 덮어 쓰게 되어 정작 해남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동인 대표의 노력으로 유선관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해남을 넘어 한국의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산사의 한옥호텔’로 출발한 지 올해로 4년째다.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유선관이 명성을 되찾으면서 이제는 국내 드라마 감독·프로듀서·작가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물론 행정안전부 前 장관이 휴식차 가족과 함께 머무르기도 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해 스위스, 벨기에, 덴마크 등 유럽에서도 자주 찾아올 정도로 정도가 됐다.

한동인 대표는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시설과 디자인에 현대적임을 더했고, 불편함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면서 “찾아와주는 이들 또한 유선관을 포함한 이 숲을 잠시 빌렸다고 생각해주길 바라며 그 동안 걷고, 듣고, 바라보며 체험하는 명상을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어 “한국의 차(茶)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초의선사’는 대흥사 일지암에 머물며 당시 지식인이자 문학인인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우정을 나누었다”면서 “그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곳곳에 남아 이 곳의 지난 시간들을 말해준다. 대흥사 대웅전의 현판은 원교 이광사 선생이 쓰셨고 대웅전옆 건물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쓰신 것으로 차를 마시며 풍경의 운치를 노래한 초의선사의 시를 읊으면 왜 이 곳의 이름이 유선(遊仙:신선이 노는 곳)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