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 헛물켜기’… 네 컷짜리 신문연재 만화 한국 최초 등장 100주년

김동성… 한국 신문 만화 개척한 언론인

한국 만화의 효시를 말할 때 전문가들은 대한협회가 발간한 1909년 6월 2일 자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한 컷 삽화를 꼽는다. 형식은 오늘날의 만평에 가깝지만 한국 만화계는 이 그림을 우리나라 만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도영을 한국 만화의 개척자로 여긴다. 대한민보는 1910년 6월 5일부터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까지 실어 초기 한국 신문의 비주얼화를 선도했다.
그 무렵 만화는 주로 ‘그림 이야기’로 불리다가 최남선이 1913년 발간한 어린이 잡지 ‘붉은 저고리’에 “다음 그림 칸을 보아야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의 순수 우리말 ‘다음엇지’가 등장한 후 ‘다음엇지’로도 불렸다. 한국 신문에 만화의 전신 격인 만평이 등장한 것은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였다. 만평을 그린 인물은 미국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하고 돌아온 김동성이었다. 단군이 남기신 터(단군유지·檀君遺趾)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그림으로 천명한 만평이었다.
김동성은 개성에서 태어나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0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에서는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신문 만평이나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잉크 펜 회화’를 읽혔다. 1916년 미국에서 출간한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 제목의 영문 도서에 직접 만화를 그려 넣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하는 교포 신문 ‘신한민보’ 1917년 4월 5일 자에 만평이 실렸다. 미국에서 신문의 역할과 만화의 효용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귀국한 것은 출국10년 만인 1919년이었다.
김동성은 귀국 후 동아일보의 창간 멤버로 참여해 편집국 조사부장을 맡았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호에 김동성의 만평을 실었다. 김동성은 4월 11일 자에 ‘이야기 그림이라’라는 제목으로 네 컷 만화도 선보였으나 띄엄띄엄 실리다가 4회 만에 중단되었다. 
김동성은 ‘이야기 그림’ 등 만화 창작에 그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썼다. 1923년 2월 잡지 ‘동명’에 최초의 만화 입문 이론서인 ‘만화 그리는 법’을 11회 실으면서 연필 쥐는 법, 책상에 앉는 자세, 인물 해부학, 원근법까지 자세한 설명과 그림을 곁들였다. 동아일보 미술담당 기자 노수현에게는 만화를 가르쳤다. 동아일보는 독자투고 만화를 중심으로 ‘동아만화’ 란을 신설, 1923년 9월 23일 자부터 4년여 간 고정 연재했다. 1923년 12월 1일 자부터는 독자투고 만화를 과감하게 1면에 싣는 파격을 선보였다. 
김동성은 만화 영역에서 동아일보의 기틀을 마련해 준 후 1924년 10월 조선일보로 적을 옮겼다. 송진우 동아일보 사장과 사이가 틀어진 이상협 편집국장이 동아를 떠나자, 그와의 의리를 지키려 함께 움직인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이상협은 편집고문, 김동성은 발행인 겸 편집국장을 맡았다.
김동성은 조선일보에서 저널리즘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대표적인 시도가 만화 연재와 부인란 신설, 그리고 여기자의 채용이었다. 그중 첫 시도는 ‘멍텅구리’라는 제목의 네 컷짜리 풍자만화였다. 마침 동아일보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노수현 학예부 기자도 이상협을 따라 조선일보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김동성은 고향이 같은 황해도이고 9살 아래인 노수현에게 만화의 이론과 기술을 가르쳤다.
김동성의 기획, 이상협(고문)과 안재홍(주필)의 스토리, 노수현의 그림으로 시작된 ‘멍텅구리-헛물켜기’가 마침내 조선일보 지면에 등장한 것은 1924년 10월 13일 자였다. 그 무렵 미국 뉴욕타임스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 ‘매기와 지그스’가 일본의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번역·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노수현… 첫 신문 연재만화 ‘멍텅구리’ 그린 동양화가

‘멍텅구리-헛물켜기’는 멍청한 키다리 재산가 ‘최멍텅’과 그를 농락하는 재미로 사는 듯한 땅딸보 친구 ‘윤바람’이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다뤘다. 첫 회는 주인공 최멍텅이 전찻길 부근을 걸어가다가 기생 신옥매의 자태에 홀려 한눈팔다가 전차에 부딪히는 내용이고, 2회는 최멍텅이 옥매 집까지 갔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개를 피하려다 개천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멍텅구리-헛물켜기’는 11월 30일 48회까지 연재되고 다음날부터 ‘멍텅구리-련애 생활’로 제목을 바꾸어 1925년 6월 13일까지 189회 연재되었다. 이후 ‘가뎡생활’, ‘세계 일주’, ‘껏덕재기’, ‘가난사리’, ‘사회사업’, ‘학창 시절’ 등의 시리즈로 2년 10개월 동안 총 10편의 이야기로 700여 회 연재되다 1927년 8월 20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멍텅구리…’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그 시절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멍텅구리가 인기를 끌자 각 신문에 비슷한 성격의 연재만화가 잇달아 등장했다. ‘멍텅구리’(김인화 그림)도 과거 명성을 믿고 중단 6년 뒤인 1933년 2월 26일 재개했으나 몇 달 연재되다가 7월쯤 지면에서 사라졌다. ‘멍텅구리’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1926년 1월 10일부터 조선극장과 우미관에서 상영되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신문 연재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노수현(1899~1978)은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 1914년 보성중학에 입학했다가 1년 과정을 마친 뒤 전문 화가가 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근대 미술학교인 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했다. 서화미술회는 이왕가의 후원을 받아 1912년 강습소를 설치하고 조선 도화서 출신의 조석진, 안중식, 정대유 등을 교사진으로 확보해 각각 3년 과정의 서과와 화과 학생을 모집했다. 그때 입학한 오일영·이용우(1기생), 김은호(2기생), 박승무(3기생)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노수현은 이상범과 함께 4기생으로 입학, 도제식으로 전통 화법을 수학했다.
1918년 4월 졸업 후에는 스승 안중식이 작고(1919년 10월)할 때까지 스승의 사저에 있는 경묵당에서 스승의 작품을 대필하며 그림을 배웠다. 안중식은 두 제자를 총애해 자신의 아호 ‘심전(心田)’에서 첫 글자를 떼어 노수현에게는 ‘심산’이란 호를 주고 뒷글자인 ‘전’자는 이상범에게 부여해 ‘창전’이 되었다. 
노수현은 1921년 시작한 ‘서화협회전(협전)’에도 출품해 1936년 제15회로 끝날 때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았다. 1922년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에도 해마다 출품했으나 1923년 제2회 선전에서 3등상을 받고 1926년 제5회 선전에서 특선에 뽑혔을 뿐 이상범에 비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노수현·이상범… 삽화·만화로 조선·동아일보 넘나들어

▲ 조선일보 1924년 10월 13일 자에 실린 ‘멍텅구리 헛물켜기’ 첫 회.

노수현의 ‘멍텅구리’ 연재는 1926년 이상범으로 바뀌었다. 노수현이 연재 중 이상협을 따라 중외일보로 옮겼기 때문이다. 노수현은 중외일보에서 ‘연애 경쟁’이라는 만화를 연재하다가 3년 뒤 그만두고 1929년 9월부터 프리랜서로 동아일보의 신문소설 삽화를 그렸다.
그러다가 1937년 10월 학예부 기자로 동아일보에 재입사했다. 1927년 10월 조선일보를 떠나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던 이상범이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수현과 이상범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넘나들었다. 노수현은 동아일보에서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과 ‘흑치상지’ 등의 삽화를 그렸다. 생활을 위해 삽화를 그리면서도 노수현은 늘 화폭과 붓을 가까이했다.
노수현의 이른바 ‘심산 양식’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시기는 1930~1940년대였다. 그것은 일본풍의 잔재를 몰아내고 전통에 귀의하는 것이었다. 또한 전통적인 화격(畵格)을 재창조해 새로운 회화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노수현이 표현한 산은 실제의 산이라기보다 머릿속에 새롭게 만들어진 관념의 산이었다. 바위를 의인화해 혼이 담긴 생명체로 보았다.
노수현은 1941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월간지 ‘신시대’에 군국주의를 선동하는 노골적인 내용을 ‘멍텅구리’ 제목으로 연재했다가 후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었다. ‘신시대’는 친일파 노익형이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을 이루기 위한 세기적 대전환기에 필요한 신시대의 대중교양”을 표방해 창간한 잡지였다.

1950년대 들어서는 관념산수를 짙게 보여주다가 1950년대 후반부터는 암산(巖山)을 주축으로 한 골격미를 풍부하게 전개한 작품을 내놓았다. 잔붓터치로 비 내리듯 점처럼 묘사하는 ‘우점 준법’과, 바위를 그릴 때 강하게 나타나는 ‘몰골 준법’으로 우리 산하를 사실감 넘치면서도 고아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해방 후에는 1948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강사로 채용되어 1961년 정년 때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49년 개설된 국전 심사위원으로 첫 회부터 거의 매년 참여했다. 마지막까지 산수 화폭에 싸여 살다가 1978년 9월 6일 제주도에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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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US 스틸’로 철강제국 완성했으나 본업은 금융제국 황제

일본제철이 122년 역사를 지닌 미국의 철강회사 'US 스틸'을 2024년 8월 말 141억 달러(약 18조 370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국가 안보 등의 이유로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들 모두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사실상 물 건너 가는 분위기였다. 다만 ‘일본제철의 US 스틸 인수&합병(M&A)’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검토 중인 미 국가안보위원회(NSC)가 최종 결론을 내리는 시점을 미 대선 이후로 미뤄 매각 성사 여부는 유동적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US 스틸’의 뿌리는 장차 ‘철강왕’으로 불리게 될 앤드루 카네기(1835~1919)다.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을 때 집안은 귀족 가문이었으나 좀처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모는 카네기가 13살 때이던 184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앨러게이니로 이주했다. 카네기에게 미국은 고난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카네기가 미국 땅에서 처음 맞닥뜨린 일은 하루 12시간 노동에 박봉을 받는 면직물 공장의 실 감기였다. 이후 전보배달원과 전신기사를 전전하던 카네기 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8살이던 1853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의 피츠버그 지부 책임자를 만나면서였다. 철도산업이 막 기지개를 켜던 무렵 지부 책임자의 개인 비서 겸 전신기사로 근무하면서 철도 업무를 배운 것은 행운이었다. 지부 책임자는 1859년 사장으로 승진, 피츠버그를 떠나면서 카네기를 피츠버그 지부 감독으로 임명할 정도로 카네기를 신뢰했다.
카네기는 회사 일을 하면서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투자해 훗날 사업에 쓸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1861년 한 철교 회사가 설립될 때 동업자로 참여하고 1864년 철도 레일 제조 회사를 설립했다. 카네기는 이 과정에서 철강 산업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1865년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를 사직한 뒤 1867년 ‘유니언 제철소’를 설립했다.
사업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 철강 도시로 천혜의 조건을 갖춘 피츠버그라는 환경적 조건이 어우러져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영국의 헨리 베서머가 시간과 비용을 현저히 줄여주는 강철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1872년 베서머의 영국 제강소를 방문, 강철의 산업적 잠재력을 깨달았다.
카네기는 1873년 과감하게 베서머 제강법을 도입한 미국 최초의 강철공장인 ‘톰슨 제철소’를 펜실베이니아주 브래독에 착공했다. 1875년 9월 가동된 ‘톰슨 제철소’에서 처음 생산한 것은 급증하는 철도 교통량에 맞춰 좀 더 육중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강철 레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잘 부서지고 높은 온도에 견디지 못하는 선철(무쇠)이 레일로 사용되고 있었다. 1881년에는 ‘프릭 코코스’ 회사에 지분(11%)을 투자했는데 다음해 지분이 50% 이상으로 늘어나 사실상 카네기의 소유가 되었다. 1886년 합병한 홈스테드 제강소는 후일 베서머 제강법을 채택하고 미국 최초의 거대한 평로를 가진 제철소로 발전했다.
카네기는 1892년 자신이 소유한 기업 전부를 ‘카네기 철강회사’로 통합했다. 석탄, 철광석, 광석 운반용 철도와 선박 등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철강 트러스트이자 ‘카네기 제국’의 탄생이었다. ‘카네기 철강회사’는 점차 전미 강철 생산량의 50% 이상을 생산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이 영국의 철강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있던 것도 승승장구한 ‘카네기 철강회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US 스틸… 세계 최초 ‘빌리언 달러’ 회사

카네기가 철강에 올인하고 있을 무렵 철도와 통신에 눈독을 들인 인물이 있었으니 금융에서 확실히 부를 쌓은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이었다.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 1869년 이후 미국의 철도사업은 급성장 중이었고 철도업자들은 막대한 이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통신은 이런 철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당시는 아직 전화기가 개발되기 전이라 주된 통신망이 전신이었다. 따라서 누구든 철도망을 장악하면 전신망까지 수중에 넣을 수 있었고, 철도망과 전신망을 장악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생한 정보를 빨리 얻어 돈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모건은 난립하는 철도회사를 마구 사들여 1890년쯤 미국의 4대 철도업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부상했다. 모건은 이를 기반으로 당시 ‘철도왕’으로 불리던 미국 최대 철도업자 윌리엄 밴더빌트와 힘을 합쳐 미국 굴지의 전기회사 ‘웨스턴 유니언사’를 인수했다. 마침 ‘발명왕’ 에디슨이 이 회사에 입사한 덕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행운까지 따랐다.
금융, 철도, 통신 쪽에서 큰돈을 벌어들여 돈방석에 앉은 모건의 다음 타깃은 ‘카네기 철강회사’였다. 당시 미국의 철강업계는 주요 8개사를 중심으로 맹렬히 경쟁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회사가 미국 전체 생산량의 50%를 점하고 있던 ‘카네기 철강회사’였다. ‘철강업의 큰손’을 꿈꾼 모건과 회사를 팔아 기부를 본격화하려는 카네기 간의 거래는 1901년 2월 26일 이뤄졌다. 거래액은 4억 9,200만 달러였다. 당시 일본의 1년 예산이 1억 3,000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모건은 새로 인수한 ‘카네기 철강회사’에 록펠러에게서 매입한 철광석 회사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철강회사들을 합쳐 1901년 3월, 초대형 철강회사 ‘US 스틸’을 설립함으로써 순식간에 미국 철강업계의 제1인자로 부상했다. 자본금만 14억 달러였으니 세계 최초 ‘빌리언 달러’ 회사의 탄생이었다.
합병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주당 38달러에 공모한 주식은 55달러로 치솟았고 창립 첫해에만 9,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US 스틸은 당시 미 철강 생산의 60%를 차지했다. 전 세계 생산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었다.
J.P. 모건에게 카네기 철강회사를 매각한 카네기는 그날로 사업에서 은퇴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날은 세계 최대의 재벌이 탄생한 날이면서 동시에 세계 최고의 자선가가 탄생한 날이기도 했다. 1919년 8월 11일 눈을 감았을 때 수중에 남은 돈이 3,000만 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카네기는 생전에 벌어들인 돈 전부를 아낌없이 사회에 돌려주었다.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변에 모으는 방법을 터득한 사나이가 여기에 잠들다”라는 묘비명이 말해주듯 카네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천부적이었다.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 존 피어폰트 모건.

존 피어폰트 모건은 카네기보다 2년 늦은 1837년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시대 미국에서 활동한 헨리 포드, 존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등 세계적인 기업가들과는 달리 자수성가형이 아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아온 물적 기반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미국 금융계의 대부로 군림하는 데 필요한 고등교육과 실전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단순히 가업을 물려주기보다는 아들을 철저히 교육해 ‘준비된 후계자’로 만들려 했다. 아들을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국제무역과 금융에 정통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854년 유럽으로 보내 스위스 기숙학교와 독일 괴팅겐대에서 수학하도록 했다.
피어폰트는 24살이던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뉴욕에 ‘JP 모건 상사’를 설립, 본격적으로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었다. 피어폰트 모건은 화약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 최대 무기상 듀폰과 손을 잡고 총기류와 군화 등을 취급하는 무기 중개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폭리를 취한 것이 드러나 악덕 상인으로 불리며 전쟁 후 국회의 진상 조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덕분에 쌓은 엄청난 부는 장차 미국의 정계와 경제계를 쥐락펴락할 모건 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모건이 US 스틸이라는 세계 최초 ‘빌리언 달러’ 회사를 탄생시키고 금융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던 1907년 10월 22일, 미국의 3대 신탁회사 가운데 하나인 뉴욕 월가의 ‘니커보커 트러스트’ 앞으로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니커보커’가 발행한 수표를 시중은행이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자 불안해진 사람들이 한꺼번에 예금 인출에 나선 것이다. ‘1907년 패닉(금융공황)’의 시작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니커보커 트러스트 소유주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돈으로 구리 회사를 인수한 뒤 구릿값과 구리 회사 주가를 올리려는 투기적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한 게 원인이었다. 당시의 왜곡된 돈의 흐름과 미 정부의 느슨한 규제도 사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금융 위기가 터지기 전, 뉴욕의 은행 대출 절반 정도가 고수익을 내는 투자신탁회사로 흘러 들어가고, 니커보커 등의 투신사는 그 돈을 위험성이 높은 증권과 채권에 쏟아부으면서 금융시장에는 극도의 투기 바람이 불었다.
1907년 예금 인출 사태가 뉴욕의 모든 금융기관과 다른 지역으로 번지고 이것을 신호탄으로 미국 경제가 패닉에 빠지면서 미국 다우지수는 연일 불안한 장세를 보였다. 뉴욕증권거래소조차 돈이 떨어져 주식거래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무능한 정부는 국가적 재앙에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피어폰트 모건은 자칫 평생에 걸쳐 구축한 자신의 왕국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 대형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투신사와 영세 은행을 살리기 위한 구제금융 자금을 내놓도록 윽박질렀다.
어느 날은 금융 대표들이 모여있는 방문을 걸어 잠근 뒤 2,500만 달러의 구제금융 조성에 합의할 때까지 밤샘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자금 부족으로 영업 중단 위기에 놓인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지원사격을 해 주식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를 막았다. 돈을 인출하려는 군중에게는 “기다려 달라”고 설득하고 공무원에게 줄 봉급마저 바닥난 뉴욕시에는 수익채권을 발행하게 한 뒤 은행이 이를 사들이게 하는 방식으로 지원했다. 이런 와중에도 모건은 잠재적 가치가 10억 달러나 되는 테네시 석탄철강철도회사를 4,500만 달러의 헐값에 인수하는 장사꾼 기질을 발휘했다.
모건이 정부를 대신해 불철주야로 금융계를 진두지휘한 결과, 몇 주일 후 파국 일보 직전까지 갔던 금융 위기는 비로소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모건은 사실상 중앙은행 구실을 한 이 일로 ‘금융계의 전설’로 불렸고, ‘월가의 구세주’로 칭송받았다. ‘모건화하다(Morganize·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하다)’, ‘모건적인(Morganesque·해결사 임무를 띤)’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모건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JP 모건의 영향력은 “하느님이 만약 자금을 조달한다면 JP 모건에게 의뢰할 것이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는데 모건과 록펠러가 세상을 바꿔버렸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질 정도로 20세기 내내 막강했다.

US 스틸… 일본‧유럽‧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모건은 1913년 3월 31일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으로 JP 모건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는 듯했으나 다행히 모건에게는 아들이면서 든든한 후계자였던 존 피어폰트 모건 2세 일명 잭 모건(1867~1943)이 있었다. 이후 세계적 투자은행으로 성장한 ‘JP 모건’의 20세기는 미국 금융자본의 성장사이자 미국의 세계 금융시장 점령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US 스틸은 1931년 준공한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포함, 미국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각종 시설물에 철강 재료를 공급한 것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항공기, 군함, 탱크 등을 만드는 데도 수억 톤의 철강을 공급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는 직원 수가 34만 명에 달하고 1960년대까지 미국 전체 조강 생산량의 약 65%를 담당하며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일본과 유럽 철강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더니 21세기 들어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의 공세에 입지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2014년에는 미국 주요 500대 기업으로 구성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S&P500) 지수에서도 퇴출되었다. 현재는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20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치인들이 매각을 반대하는 것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해온 역사적 상징성 때문에 심정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NM